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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이 낳은 세계적인 마라토너 "남승룡 선수"

순천 남승룡 마라톤 대회는 순천이 낳은 세계적인 마라토너인 故 남승룡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있다. 한국마라톤 1세대를 대표하는 故 남승룡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이다. 일제강점기 '금메달에 버금가는 값진 동메달'을 따내 민족의 억눌린 한을 풀어낸 영웅이다.

그는 순천이 낳은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이자 전남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남승룡 선생은 1912년 11월 23일 순천시 저전동에서 태어났다. 순천공립보통학교(현 순천남초등학교)학생시절 외사촌 형이 운동회에서 일본인들과 경쟁, 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을 보고 마라톤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달리기가 하고 싶어 뒤늦게 상경해 육상의 명문 양정고보를 거쳐 일본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철도국에 근무하였고 전남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1932년 10월 경성 운동장(지금의 동대문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8회 전조선 육상경기대회에서 5천m/1만m를 모두 제패하였으며, 1934년 9월 미/일 대항 5천m 경기대회에서도 우승하였다.

1936년 5월 11일 올림픽대회 파견 마라톤 선수 최종 선발전에서는 1위를 하여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2위를 차지한 손기정 선수와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이 대회에서 당시 장거리 부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핀란드 선수를 뒤쫒다 페이스를 너무 늦춰 아깝게 3위에 머물렀다. 2시간 31분 42초로 2위를 한 하퍼선수와는 19초 간격으로 골인하였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남승룡은 한민족 기개와 마라톤 왕구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과시하였다. 남달리 조국을 위한 신념이 강했던 남승룡 선생은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에게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스포츠를 통한 또 다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광복이후에는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코치겸 선수로서 손기정 감독과 스텝을 이루어 서윤복의 우승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남승룡 선생은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등산과 체조 등으로 건강을 유지하였고, 틈틈이 여행을 즐기며 사는 영원한 육상인이자 체육인이었다. 선생은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대한육상 경기연맹 이사(1947~1963)를 역임하고 전남대학교에서 후진을 지도(1953~1961)하였다.

선생의 조카 남청웅씨는 "남승룡 선생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마라톤을 철학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남승룡 선생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서울에서 고향 순천까지 하루에 200리(80km)에서 250리(100km)를 5일간 뛰어 고향 순천에 온 사실도 있었고 부모님의 여수 심부름도 뛰어서 해결하는 등 달리기를 생활화 하는 등 좋아했다"고 말했다.